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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F현장] "여당 스탠스로 써라"…임종헌 '파업공화국' 문건의 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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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평강비 작성일20-06-30 04:24 조회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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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지난달 18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속행 공판에 출석하고 있다. /이덕인 기자

문건 작성 판사 증인 출석…임 전 처장 "구체적 지시한 적 없어"

[더팩트ㅣ송주원 기자] 업무방해죄는 헌법이 보장한 노동3권(단결권·단체교섭권·단체행동권)을 행사했더라도 사업장에 '막대한' 손해를 끼쳤다면 형사처벌할 수 있다는 점에서 논란이 많다. 업무방해죄 기원이 1800년대 프랑스에서 노동운동을 억압하기 위해 제정된 법에 있다는 점에서 예견된 논란이었다. 현재 프랑스는 해당 조항을 폐지했고, 대부분 나라에서도 사실상 사문화됐다. 국내 법조계 안팎에서도 개정 논의가 활발했지만 '양승태 대법원'의 분위기는 달랐다.

2015년 11월 법원행정처 심의관이 쓴 업무방해죄 헌법소원 사건에 관한 문건에는 헌재가 노동자들의 손을 들어준다면 "파업공화국이 우려된다"는 문구가 쓰였다. 이 문건을 작성한 전 심의관은 "임 전 차장 지시로 문건을 썼고 '국정안정 저해'라는 문구를 넣으라고도 했다"고 인정했다. 다만 '파업공화국'이 누구의 머릿속에서 나온 단어였는지 명확한 답을 내놓지 못했다.

29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6부(윤종섭 부장판사) 심리로 열린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의 51차 공판에는 그의 지시를 받고 '업무방해죄 관련 한정위헌 판단의 위험성' 문건을 작성한 최누림 부장판사가 증인으로 나왔다.

최 부장판사는 2015년 2월~2017년 2월 법원행정처 사법정책심의관으로 근무하던 중 임 전 차장에게 상당한 분량의 자료와 함께 "2쪽 분량으로 요약해 보고서를 작성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임 전 차장은 정리해고에 반대하는 부분 파업을 단행했다가 업무방해죄로 유죄가 확정된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노동자들 사건에 관한 자료를 건넸다. 이 노동자들은 대법원에서도 벌금형이 확정되자 헌법소원을 냈다. 임 전 차장이 문건 작성을 지시할 무렵 "헌법재판관 평의 과정에서 '한정위헌' 결정을 내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는 사실이 파견 법관을 통해 법원행정처로 흘러들어왔다. 헌재 평의는 헌법재판관 전원이 참석한 비공개 회의로 대법원 파견 법관은 물론 헌재 기록관도 배석할 수 없다.

한정위헌 결정이란 법률 조항의 위헌성을 따지는 단순위헌과 달리, 법원의 법 해석이 위헌적이라는 취지의 결정이다. 공소사실을 종합하면, 최고 사법기관은 대법원이어야 했던 '양승태 대법원'은 헌재가 법원의 해석을 왈가왈부하는 걸 두고 볼 수 없었다. 이에 따라 당시 법원행정처는 한정위헌 결정을 막기 위해 심의관들을 시켜 그 방안을 검토하게 한 것으로 조사됐다. 이 사건 문건의 경우, 박근혜 정부의 힘을 빌려 헌재를 압박하기 위해 노동자들의 파업을 국정운영과 연관지어 작성하도록 하고 청와대에 전달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날 최 부장판사는 임 전 차장의 지시로 이 문건을 작성했다고 시인했다. 다만 '문건 작성 당시, 파업의 파급 효과와 재계에 미치는 악영향 등을 강조하고 법률적 부분은 줄여도 된다고 했느냐'는 질문에는 "법률적 내용을 줄이면 좋겠다, 관련 통계 넣어 달라는 이 두마디가 기억 난다"고 답변했다.

임 전 차장 지시대로 작성한 문건에는 법률적 내용이 대폭 줄어든 대신, 노동자들의 파업률이 점점 높아지고 있다는 통계와 파업에 따른 '악영향'이 노골적으로 적혔다. '(한정위헌 결정 시) 민주노총과 민변의 숙원 사업 달성', '파업공화국 초래', '불법파업 폭증으로 경제 악화', '광복 후 70년간 일관된 위력의 개념 부정' 등이 골자다. '광복 이후 70년간의 대법원 판례를 뒤집어서는 안된다'는 등이 그 이유였다. 이 중 '파업공화국'이라는 단어의 출처에 대한 그의 증언은 엇갈렸다.

검찰: 증인은 이 문건에서 헌재의 한정위헌 결정 시 "파업공화국 초래 및 민주노총과 민변의 숙원사업 달성"이라고 기재한 사실이 있습니까?

최 부장판사: 사실 문서 내용도 잘 기억나지 않습니다. (웃음) 제 주된 업무도 아니었고 5년 전의 일이라서요. 요약해줬으면 좋겠다는 지시를 받고 최대 1~2시간 안에 해결한 사안입니다. 제게는 강한 기억이 아닙니다.

검찰: '파업공화국', 피고인이 준 워딩 아닙니까?

최 부장판사: 통계를 작성하는 과정에서 워딩을 옮긴 것인지, 아니면 피고인이 준 문서에서 나온 것인지 기억이 안 납니다.

증인신문 말미 검찰의 재 주신문에 나온 내용에 따르면, 최 부장판사는 이같은 단어를 평소 써본 적이 없어 '생소했다'고 한다.

검찰: 증인의 수사과정 2회 진술 조서 9쪽에 따르면, 증인은 이 문건을 설명하며 "파업공화국은 제가 평소에 쓰는 말이 아니라 생소합니다. 임 전 차장 지시인 것 같은데 명확하지는 않습니다"라고 진술하셨는데요.

최 부장판사: 네, 맞습니다. 명확히 기억나지 않습니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이 29일 오전 공판에 출석하기 위해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 들어서고 있다. /이새롬 기자

이 문건은 박근혜 정부 당시 청와대와도 관련성이 깊다. 당시 법원행정처는 헌재의 한정위헌 결정을 막기 위해 정권의 힘을 빌리려 했고, 이에 따라 '설명 자료' 차원에서 최 부장판사의 문건을 청와대에 전달했다고 검찰은 보고 있다. 공소장에는 '청와대에 호소할 필요가 있다'고 쓰였다. 실제로 최 부장판사는 임 전 차장에게 문건 작성 지시를 받았을 때 "어떤 스탠스로 써야 하냐"고 물었다고 밝혔다. 이에 임 전 차장은 '범 여권(박근혜 정부) 쪽'이라는 취지로 답했다고 한다.

검찰: 임 전 차장이 어떤 방향으로 스탠스를 잡으라고 했습니까?

최 부장판사: 그렇게 말씀하신 적 없고, 어떤 스탠스에서 쓰면 되냐고 물으니 "여권 또는 여당"이라고 하셨습니다.

검찰: 스탠스를 질문한 이유가 무엇이었습니까?

최 부장판사: 특별한 이유는 없습니다. (임 전 차장이 준 자료가) 분량이 많아서 어떤 방향으로 요약이 필요한지 물었을 뿐입니다.

최 부장판사의 문건에는 "헌재가 한정위헌 결정을 하게 된다면 이는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의 법률해석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최초의 사례로 사법기관 갈등을 부추겨 대법원 헌재의 정면충돌을 초래할 우려가 있고 국정안정 저해 요소로 작용할 것이며 국민의 입장에서 극심한 불안과 혼란이 야기될 가능성이 있다"고도 쓰였다. 사법부 내 갈등이 청와대 및 국정 운영과도 관련있다는 점을 강조한 것으로 풀이된다. 최 부장판사는 '국정안정 저해'라는 용어는 임 전 차장의 지시였다는 취지로 증언했다. '헌재가 진행 중인 사건에 대해 한정위헌 결정을 내릴 시 국정안정을 저해한다는 내용을 넣게 된 경위는 무엇인가'라는 검찰의 질문에 최 부장판사는 "잘 모르겠지만, 피고인에게 '한 줄 넣어달라' 정도의 지시를 받은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앞서 임 전 차장 측은 최 부장판사에게 문건 작성을 지시했고, 이 문건을 곽병훈 당시 청와대 법무비서관에게 전달했다고 인정했다. 다만 검찰 주장대로 헌재를 압박할 의도는 없었고, 한정위헌 결정 시 우려 사항을 전달한 것 뿐이라는 입장이다.

이날 재판에서도 임 전 차장 측 변호인은 최 부장판사의 문건 어디에도 헌재를 압박하겠다는 내용은 찾아볼 수 없으며, 사법기관 간 갈등이 사회에 혼란을 초래할 수 있다는 '객관적 사실'을 기술했다고 주장했다. '증인은 사법기관 갈등으로 국정안정이 저해되고 국민 입장은 혼란스러우며, 헌법과 국가 분쟁 해결 시스템이 붕괴된다는 우려 사항을 객관적으로 기술한 것 아니냐'는 변호인의 질문에 최 부장판사 역시 "네"라고 긍정했다. '피고인이 국정안정 저해 요소라는 말을 추가하라고 했지만, 구체적 이유는 말하지 않지 않았느냐'는 질문에도 "그렇다"고 했다. '피고인이 혹시 청와대의 환심을 사야한다는 문구를 포함하라고 한 적 있느냐'는 질문에 역시 최 부장판사의 답은 "들은 적 없다"였다.

파업공화국 등 과격한 단어를 직접 지시한 사실도 없다고 변론했다. 주말도 없이 일할 정도로 업무가 많았던 임 전 차장으로서는 일일이 지시할 시간조차 없었다는 이유다. 특히 중장기 사법정책 방안을 연구하는 사법정책실의 경우 법원행정처 내에서도 '엘리트 집합소', '아이디어 뱅크'로 통했다. 사정이 이런만큼 임 전 차장 역시 사법정책실에 지시를 내릴 때는 굳이 세세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는 주장이다. 최 부장판사 역시 '자신의 업무량도 많았던 피고인이 엘리트들이 모인 곳이자 법원의 중장기적 사업 방안을 모색하는 사법정책실 소속의 증인에게 지시할 때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지시하던가'라는 변호인의 질문에 "그렇게 구체적으로 지시하는 일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

2017년 일각을 드러낸 '양승태 대법원'의 사법행정권 남용 의혹의 한 축은 최고의 사법기관을 놓고 헌법재판소를 상대로 위상 강화를 꾀했다는 것이다. 사진은 서울 종로구 헌법재판소. /남윤호 기자

지난해 10월 양승태 전 대법원장 등의 재판에 증인으로 나왔던 최 부장판사의 직속 상관 심준보 전 사법정책실장은 그를 '별종'이라 칭했었다. 시키지 않은 일도 척척 해낸다는 의미였다. 법관 비위 의혹이 포함된 '정운호 게이트' 관련 문건을 작성한 이 역시 최 부장판사였는데, 직속 상관으로서 그에게 문건 작성을 지시했냐는 검찰의 질문에 심 전 실장은 직접 지시한 적은 없다고 대답했다. 이에 검찰이 "격무에 시달리는 심의관이 시키지도 않은 일을 했다는 건가"라고 되묻자 심 전 실장은 "최 판사가 굉장한 별종이란 걸 알고 본다면 이상하지 않을 것"이라고 응수했다.

파업공화국은 별종이라 불릴 정도로 '일벌레'였던 그의 아이디어였을까, 아니면 법원행정처의 또 다른 일벌레인 임 전 차장이 건넨 방대한 자료 어딘가에 새겨진 단어였을까.

임 전 차장의 다음 공판은 30일 오전 10시에 열린다.

ilraoh@tf.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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